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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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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필은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난 라디오 DJ로, 1960년대부터 2004년 사망할 때까지 BBC 라디오 1에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펑크 록을 비롯한 주류 음악 외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며, '필 세션'을 통해 신인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다. 댄들리온 레코드와 스트레인지 프루트 레코드라는 음반 레이블을 설립하여 신인 음반 발매에도 기여했다. 1998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사후에도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와 기념 사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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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97년의 존 필
1997년의 필
본명존 로버트 파커 레이븐스크로프트
출생일1939년 8월 30일
출생지헤스월, 잉글랜드
사망일2004년 10월 25일 (65세)
사망지쿠스코, 페루
직업라디오 진행자
저널리스트
배우자셜리 앤 밀번 (1965년 결혼, 1973년 이혼)
쉴라 길훌리 (1974년 결혼)
자녀4명 (톰 포함)
훈장
훈장OBE

2. 어린 시절

존 필(John Peel)은 1939년 8월 30일 헤스월의 한 요양원에서 조안 메리(결혼 전 성은 스웨인슨)와 면 상인 로버트 레슬리 레이븐스크로프트의 아들인 존 로버트 파커 레이븐스크로프트로 태어났다.[3][4][5] 그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고, 근처의 버튼 마을에서 자랐다.[5] 그는 기숙사생으로 슈루즈베리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미래의 몬티 파이썬 멤버 마이클 페일린이 그의 동시대인이었다.[6]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에서 필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더 나이가 많은 학생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다.[7]

필은 어릴 때부터 열렬한 라디오 청취자이자 음반 수집가였으며, 처음에는 미국군 방송과 라디오 룩셈부르크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들었다.[8] 그는 "자신이 듣고 다른 사람들도 듣게 하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있도록"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했던 초기 욕망을 회상했다.[8] 필이 "매우 괴짜"라고 묘사한 그의 사감 R. H. J. 브룩은 그의 학교 보고서에 "존이 듣기 싫은 음반에 대한 열정과 길고 재치 있는 에세이를 쓰는 즐거움으로 어떤 악몽 같은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9]

필은 1959년에 영국 육군에서 B2 레이더 조작병으로 징병제를 마쳤다. 그 후 그는 로치데일의 타운헤드 밀에서 공장 작업자로 일했고 매 주말 누이에게 빌린 스쿠터를 타고 헤스월로 돌아왔다. 그는 주중에 로치데일에 머무는 동안 밀크스톤 로드와 드레이크 스트리트 지역의 B&B에 머물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도시와 장기적인 관계를 발전시켰다.

2. 1. 출생과 성장

존 필(John Peel)은 1939년 8월 30일 헤스월의 한 요양원에서 존 로버트 파커 레이븐스크로프트로 태어났다.[3][4][5] 그의 어머니는 조안 메리(결혼 전 성은 스웨인슨)이며, 아버지는 면직물 상인이었던 로버트 레슬리 레이븐스크로프트이다.[3][4][5] 그는 근처의 버튼 마을에서 자랐으며,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5] 슈루즈베리 학교에서 기숙사생으로 교육을 받았고, 훗날 몬티 파이썬 멤버가 되는 마이클 페일린이 그의 동기였다.[6] 그는 어릴 적부터 미국군 방송과 라디오 룩셈부르크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들으며 라디오 청취와 음반 수집에 열심이었다.[8] 1959년에는 영국 육군에서 B2 레이더 조작병으로 징병제 복무를 마쳤다.

2. 2. 학창 시절

존 필은 헤스월의 한 요양원에서 태어나, 버튼 마을에서 자랐다.[5] 그는 기숙사생으로 슈루즈베리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훗날 몬티 파이썬의 멤버가 되는 마이클 페일린이 그의 동창이었다.[6] 학교에 다니는 동안 더 나이가 많은 학생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에서 밝혔다.[7]

어릴 때부터 열렬한 라디오 청취자이자 음반 수집가였으며, 처음에는 미국군 방송과 라디오 룩셈부르크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들었다.[8] 그는 "자신이 듣고 다른 사람들도 듣게 하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있도록"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했다.[8] 그의 사감 R. H. J. 브룩은 그의 학교 보고서에 "존이 듣기 싫은 음반에 대한 열정과 길고 재치 있는 에세이를 쓰는 즐거움으로 어떤 악몽 같은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9]

2. 3. 군 복무 및 초기 경력

존 필은 1959년에 영국 육군에서 B2 레이더 조작병으로 징병제를 마쳤다.[3][4][5] 제대 후에는 로치데일의 타운헤드 밀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주말마다 헤스월로 돌아왔다.

3. 경력

1939년 8월 30일, 리버풀 근교의 체셔주 (현재는 머지사이드주) 헤스월에서 태어났다[83]。1957년부터 1959년까지 영국 육군의 포병대에서 B-2 레이더 조작원으로 근무했다[83]。그 후, 로치데일의 공장에서 근무했다[83]

196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주댈러스의 라디오 방송국 WRR에서 근무했다[83]。1963년, 『리버풀 에코』 신문 기자로서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취재했다[83]

1967년, 잉글랜드로 돌아왔다[81]。해적 방송인 라디오 런던에서 심야 프로그램 『''The Perfumed Garden''』을 담당하여, 청취자들에게 미국의 캡틴 비프하트 앤드 히즈 매직 밴드나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을 소개했다[83][84]。이 무렵부터 '''존 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83]。같은 해, BBC에 신설된 팝 음악 방송국 BBC 라디오 1과 계약하여 『''Top Gear''』를 담당했다[83]。『''Peel Sessions''』에서는, 스튜디오에 뮤지션을 초청하여 연주를 시켰다[81]。대부분의 청취자들이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나 밴드가 빈번하게 초청되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음반 회사와 계약하기 전이었다[81]。수천 명의 뮤지션들이 녹음과 방송 기회를 무료로 얻었고[83], XTC처럼 출연을 계기로 음반 회사에 재능을 인정받아 계약을 따낸 사람도 배출되었다[85]

동시에 신인 음원의 발매·유통에도 참여하여,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음반 레이블 「댄들리온 레코드」를 주재했다[86]

1998년부터는, BBC 라디오 4의 프로그램 『''홈 트루스''』도 담당했다[81]。 같은 해,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받았다[81]

2004년 10월 25일, 휴가를 위해 체류 중이던 페루쿠스코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81]。향년 65세[81]。라디오 1에서는, 필의 사망이 전해진 후, 그가 좋아했던 더 언더토운스의 곡 「Teenage Kicks」가 흘러나왔다[87]。그의 유해는 서퍽의 성 안드레아 교회에 매장되었다[88]。그 묘비에는, 해당 곡에서 따온 구절 ("Teenage dreams so hard to beat") 이 새겨져 있다[89]


  • 최첨단 음악을 틀겠다는 그의 자세는 사망할 때까지 변치 않았으며, 만년에는 댄스 뮤직, 특히 덥스텝의 인기 향상에 기여했다.[90]
  • 아들 Tom Ravenscroft영어도 라디오 DJ가 되었고[91], 2018년 현재 BBC 라디오 6 뮤직에 출연하고 있다.[92]
  • 피터 바라칸은 청년기에 필의 프로그램을 런던에서 들었고, "'성실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93]

3. 1. 미국 시절 (1960-1967)

1960년, 존 필은 아버지와 사업 관계가 있던 면화 재배업체를 위해 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여행 보험 증권 판매원 등 여러 직업을 가졌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보험 회사에 근무하던 중, 1960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존 F. 케네디린든 B. 존슨을 만나 대화하고 사진을 찍었다. 1963년 11월 케네디 암살 사건 당시, 필은 리버풀 에코의 기자 행세를 하며 리 하비 오스왈드의 기소에 참석했고, 친구와 함께 오스왈드가 언론 앞에 등장했을 때의 22/23일 자정 기자 회견의 영상에 등장한다.[10] 그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에코''에 전화로 전했다.

보험 회사에서 일하면서 IBM 1410 컴퓨터용 천공 카드 입력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댈러스의 WRR (AM)에서 무보수로 첫 라디오 일을 시작하여, 짐 로가 진행하는 월요일 밤 프로그램 ''Kat's Karavan''의 두 번째 시간을 맡았다. 비틀마니아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리버풀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댈러스 라디오 방송국 KLIF에 공식 비틀즈 특파원으로 고용되었다. 1965년까지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의 KOMA에서 일하다가,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의 KMEN으로 옮겨 자신의 본명인 존 레이븐스크로프트로 아침 방송을 진행했다.[11]

3. 2. 영국으로의 귀환과 해적 라디오 (1967)

필은 1967년 초 영국으로 돌아와 해상 해적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했다.[12] 그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의 방송 시간을 제안받았고, 이는 점차 ''The Perfumed Garde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13][14]

필의 쇼는 영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배출구였다. 그는 고전 블루스, 포크 음악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했으며,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음악을 강조했다. 프로그램의 음악적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필의 개인적이고 때로는 고백적인 어조와 그것이 유발한 청취자 참여였다. 그가 육지 휴가 기간 동안 참석했던 UFO 클럽과 14시간 테크니컬러 드림과 같은 언더그라운드 행사, 그리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건인 롤링 스톤스와 존 "호피" 홉킨스의 마약 단속과 같은 사건들이 음반 사이에 논의되었다. 이 모든 것은 라디오 런던의 주간 형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취자들은 필에게 편지, 시, 자신들의 소장 음반을 보냈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양방향 소통의 수단이 되었다. 라디오 런던의 마지막 주에 그는 방송국 내 다른 어떤 DJ보다 훨씬 많은 우편물을 받았다.[15]

1967년 라디오 런던이 폐쇄된 후, 필은 언더그라운드 신문 ''인터내셔널 타임스''에 ''The Perfumed Garden''이라는 칼럼을 썼다(1967년 가을부터 1969년 중반까지).[16]

3. 3. BBC 라디오 1 (1967-2004)

1967년 8월 14일, 해적 방송 라디오 런던이 폐국되자 필은 BBC의 새로운 음악 방송국인 BBC 라디오 1에 합류했다. BBC 라디오 1은 1967년 9월 30일에 첫 방송을 시작했다. 필은 BBC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해적선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했다"라고 생각해서 고용되었다고 말했다. 필은 ''탑 기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피트 드럼몬드, 토미 밴스 등 다른 DJ들과 함께 진행했지만, 1968년 2월부터 단독으로 ''탑 기어''를 맡게 되었다. 그는 1975년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이 쇼를 진행했다.

1969년, 필은 ''나이트 라이드'' 프로그램에서 BBC의 성병 관련 프로그램 예고편을 진행한 후, 그해 초에 성병을 앓았다고 방송에서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발언은 1971년 ''오즈'' 외설 재판에서 그가 변호인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는 시도에 이용되었다.

BBC가 단어와 음악의 탐구라고 광고한 ''나이트 라이드'' 프로그램은 ''향기로운 정원''의 뒤를 잇는 듯했다. 록, 포크, 블루스, 클래식, 전자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었다.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특징은 BBC 사운드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주로 이국적인 비서구 음악 트랙을 포함한 것이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은 BBC 레코드 LP인 ''존 필의 아카이브 띵스''(1970)에 수집되었다. ''나이트 라이드''는 또한 시 낭독과 마크 볼란, 언론인이자 음악가인 믹 패런, 시인 피트 로치, 싱어송라이터 브리지트 세인트 존, 그리고 버즈, 롤링 스톤스, 존 레논오노 요코와 같은 스타들을 포함한 다양한 게스트들과의 인터뷰를 특징으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언더그라운드 씬의 창조적인 활동을 많이 담아냈다. 그러나 기성 체제에 반대하는 입장과 예측 불가능성은 BBC 수뇌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고, 18개월 만인 1969년 9월에 종료되었다.

''아카이브 띵스'' LP의 커버 노트에서 필은 ''나이트 라이드''의 자유 형식의 특징을 자신이 선호하는 라디오 형식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후속 쇼는 레코드와 라이브 세션의 혼합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형식은 그의 라디오 1 프로그램의 특징이 되었고 그의 경력의 나머지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3. 3. 1. 펑크 록 시대

존 필은 주류 음악 외의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끔씩 라디오 1의 상층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 번은 방송국 컨트롤러인 데릭 치너리가 존 월터스에게 연락하여, 그가 언론에서 접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펑크를 방송에서 전혀 틀지 않는지 확인하려 했다. 치너리는 월터스의 답변에 다소 놀랐는데, 그들은 최근 몇 주 동안 펑크 외에 다른 음악을 거의 틀지 않았기 때문이다.[17]

1990년 인터뷰에서 필은 1976년 뉴욕 펑크 밴드 라몬즈의 첫 앨범을 발견한 것을 획기적인 사건으로 회상했다.

"당시 거의 모든 새로운 밴드는 이전에 성공한 밴드였다가 해체 후 재결성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나는 라몬즈의 첫 번째 LP를 틀었는데 - 리틀 리처드를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았다 - 그 강렬함은 끔찍했다! 그래서 다음 쇼에서 다섯 곡이나 여섯 곡을 틀었더니, 사람들은 그런 음악은 다시는 틀지 말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항상 반대 방향으로 갔고, 더 많이 틀었더니 훌륭했다! 이것은 도중에 방향을 바꾸는 전형적인 경우였고, 한 달 만에 청취자의 평균 연령이 10세 낮아졌고, 사회 계층도 완전히 바뀌었다 - 나는 그것이 매우 기뻤다."[8]

1979년 필은 "그들은 당신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나는 BBC에서 상업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지 않도록 돈을 받고 있다... 어쨌든 그런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BBC가 허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18]

3. 3. 2. 후기 활동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필은 BBC 라디오 4에서 어린이에 관한 쇼인 《Offspring》을 진행했다. 1998년, 《Offspring》은 잡지 형식의 다큐멘터리 쇼 《홈 트루스》로 발전했다. 영국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필은 실제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연예인이 없는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필은 또한 BBC 투의 현대 생활의 짜증에 대한 유머러스한 시선인 《심술궂은 노인들》에 정기적으로 출연했다.

2003년 4월, 출판사 트랜스월드는 필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여 자서전에 대한 150만 파운드 상당의 패키지로 필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25] 그의 사망 당시 미완성이었던 이 자서전은 쉴라와 언론인 라이언 길비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책은 2005년 10월 《Margrave of the Marshe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3. 4. 필 세션 (Peel Sessions)

필 세션은 그의 BBC 라디오 1 쇼의 특징이었으며, 일반적으로 BBC의 스튜디오에서 미리 녹음된 4곡의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이 세션은 원래 음악가 연합(영국)과 음반 제작사 연합이 BBC에 부과한 제약 때문에 생겨났으며, 이들은 EMI 카르텔이 지배하는 음반 회사를 대표했다.[51]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BBC는 녹음된 음악의 커버 버전을 연주하기 위해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고용해야 했다. 이 장치의 이론적 배경은 고용을 창출하고 사람들이 레코드를 구매하도록 강요하며, 방송에서 무료로 듣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해상 방송국이 "해적"이라고 불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영국의 법률 밖에 있었고, 방송에서 재생할 수 있는 레코드 수에 대한 니들 타임 제한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51]

BBC는 자체 하우스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고용했으며, BBC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용으로 독점 트랙을 녹음하기 위해 외부 밴드도 참여시켰다. 이것이 필이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세션맨"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세션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녹음하고 믹싱된 4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었으며, 라이브 공연과 완성된 녹음의 중간 지점인 투박하고 즉흥적인 데모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필이 BBC 라디오 1에서 37년 동안 활동하는 동안 2,00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4,000개 이상의 세션을 녹음했다.[51] 많은 클래식 필 세션이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며, 특히 스트레인지 프루트 레코드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51] 2020년 5월, 다른 사람들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수백 개의 클래식 필 세션의 알파벳순 목록이 발행되었다.[52]

3. 5. 페스티브 피프티 (Festive Fifty)

페스티브 피프티는 청취자들이 투표하여 선정한, 그 해 최고의 트랙을 순위대로 매기는 연례 행사로, 존 필의 라디오 1 프로그램에서 진행되었다. 1991년에는 투표 부족으로 인해 차트 방송이 취소되었다.[53] 1993년에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가 1위를 차지한 팬텀 피프티가 프로그램당 한 곡씩 방송되었다.[53] 1997년 차트는 방송 시간 부족으로 취소될 뻔했으나, 전화 투표가 충분히 접수되어 페스티브 서티-원(Festive Thirty-One)이 편성되어 방송되었다.[53]

존 필은 페스티브 50이 1970년대 초중반, 존 월터스와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두운 제목의 프로그램에 대한 당시 라디오 1 경영진의 열정을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조롱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페스티브 40 대신 페스티브 50을 선택했고, 이 결정으로 인해 12월마다 집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말했다.[54]

그의 사망 후, 페스티브 피프티는 롭 다 뱅크, 휴 스테픈스, 라스 콰메가 라디오 1에서 2년 동안 계속 진행했지만, 이후 필에게 영감을 받은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인 댄들리온 라디오로 넘어가 계속 편성되고 있다.

3. 6. 댄들리온 레코드와 스트레인지 프루트 레코드

1969년, 필은 자신이 프로듀싱한 브리짓 세인트 존의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댄들리온 레코드(애완 햄스터의 이름을 따서 지음)를 설립했다.[55] 이 레이블은 1972년에 폐업하기 전까지 18명의 다른 아티스트의 27개 앨범을 발매했다.[55] 앨범 중에는 샘플러인 ''There is Some Fun Going Forward''가 있었는데, 이는 댄들리온 소속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청중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댄들리온은 전국적인 차트에서 단 두 개의 음반만 성공했을 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55] 그 두 개의 음반은 Medicine Head의 "(And the) Pictures in the Sky"와 보의 "1917 Revolution"으로 레바논에서 발매되었다.[55] 1959년 로치데일의 면직 공장에서 일하면서 맨체스터 지역과의 인연을 맺은 필은 맨체스터 밴드인 스택 와디와 트랙터를 댄들리온에 영입했으며, 평생 동안 두 밴드를 지원했다.[55] 필은 트랙터가 보낸 테이프가 담긴 봉투에서 로치데일 우체국 소인을 발견했는데, 당시 트랙터는 "The Way We Live"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55]

필은 댄들리온 레코드가 "재정적으로는 절대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억하기로는 딱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음반에서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또한 "꽤 좋아했지만, 너무 제멋대로였"고 "사업 파트너가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레이블을 갖는 게 좋았"고 "그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할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발표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사업 수완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인정했다.

필은 데이비드 베드포드 앨범인 ''Nurses Song with Elephants''에 출연했는데, 이 앨범은 마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Some Bright Stars for Queen's College" 트랙에서 27개의 플라스틱 파이프 회전판을 연주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 필은 클라이브 셀우드와 함께 스트레인지 프루트 레코드를 설립하여 BBC가 필 세션을 위해 녹음한 자료를 발매했다.

4. 개인사

1939년 8월 30일, 리버풀 근교의 체셔주 (현재는 머지사이드주) 헤스월에서 태어났다[83]。1957년부터 1959년까지 영국 육군의 포병대에서 B-2 레이더 조작원으로 근무했다[83]。그 후, 로치데일의 공장에서 근무했다[83]

196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주댈러스의 라디오 방송국 WRR에서 근무했다[83]。1963년, 『리버풀 에코』 신문 기자로서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취재했다[83]

1967년, 잉글랜드로 돌아왔다[81]。해적 방송인 라디오 런던에서 심야 프로그램 『''The Perfumed Garden''』을 담당하여, 청취자들에게 미국의 캡틴 비프하트 앤드 히즈 매직 밴드나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을 소개했다[83][84]。이 무렵부터 '''존 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83]。같은 해, BBC에 신설된 팝 음악 방송국 BBC 라디오 1과 계약하여 『''Top Gear''』를 담당했다[83]。『''Peel Sessions''』에서는, 스튜디오에 뮤지션을 초청하여 연주를 시켰다[81]。대부분의 청취자들이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나 밴드가 빈번하게 초청되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음반 회사와 계약하기 전이었다[81]。수천 명의 뮤지션들이 녹음과 방송 기회를 무료로 얻었고[83], XTC처럼 출연을 계기로 음반 회사에 재능을 인정받아 계약을 따낸 사람도 배출되었다[85]

동시에 신인 음원의 발매·유통에도 참여하여,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음반 레이블 「댄들리언」을 주재했다[86]

1998년부터는, BBC 라디오 4의 프로그램 『''Home Truths''』도 담당했다[81]。 같은 해,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받았다[81]

2004년 10월 25일, 휴가를 위해 체류 중이던 페루쿠스코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81]。향년 65세[81]。라디오 1에서는, 필의 사망이 전해진 후, 그가 좋아했던 더 언더토운스의 곡 「Teenage Kicks」가 흘러나왔다[87]。그의 유해는 서퍽의 성 안드레아 교회에 매장되었다[88]。그 묘비에는, 해당 곡에서 따온 구절 ("Teenage dreams so hard to beat") 이 새겨져 있다[89]

1965년 댈러스에 거주하던 25세의 필은 15세 미국 소녀 셜리 앤 밀번과 결혼했다.[27] 이 결혼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는데, 그녀가 그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1967년 그녀는 필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곧 별거했고 1973년에 이혼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1987년 밀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8]

필은 1974년 8월 31일 셰일라 길훌리와 결혼했다. 피로연은 리젠트 파크에서 열렸으며, 로드 스튜어트가 들러리를 섰다.[29] 1970년대에 필과 길훌리는 그레이트 핀버러에 있는 초가집인 "필 에이커스"로 이사했다. 이후 몇 년 동안 필은 집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쇼를 방송했으며, 길훌리와 그들의 자녀들이 종종 참여하거나 언급되었다. 필의 리버풀 FC에 대한 열정은 그의 자녀들의 이름에 반영되었다. 윌리엄 로버트 안필드 레이븐스크로프트, 알렉산드라 메리 안필드 레이븐스크로프트, 토마스 제임스 달글리시 레이븐스크로프트, 플로렌스 빅토리아 샹클리 레이븐스크로프트였다. 현재 톰 레이븐스크로프트로 더 잘 알려진 토마스도 라디오 DJ가 되었다.[30]

4. 1. 결혼

1965년 댈러스에 거주하던 25세의 필은 15세 미국 소녀 셜리 앤 밀번과 결혼했다.[27] 이 결혼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는데, 그녀가 그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1967년 그녀는 필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곧 별거했고 1973년에 이혼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1987년 밀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8]

필은 1974년 8월 31일 셰일라 길훌리와 결혼했다. 피로연은 리젠트 파크에서 열렸으며, 로드 스튜어트가 들러리를 섰다.[29] 1970년대에 필과 길훌리는 그레이트 핀버러에 있는 초가집인 "필 에이커스"로 이사했다. 이후 몇 년 동안 필은 집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쇼를 방송했으며, 길훌리와 그들의 자녀들이 종종 참여하거나 언급되었다. 필의 리버풀 FC에 대한 열정은 그의 자녀들의 이름에 반영되었다. 윌리엄 로버트 안필드 레이븐스크로프트, 알렉산드라 메리 안필드 레이븐스크로프트, 토마스 제임스 달글리시 레이븐스크로프트, 플로렌스 빅토리아 샹클리 레이븐스크로프트였다. 현재 톰 레이븐스크로프트로 더 잘 알려진 토마스도 라디오 DJ가 되었다.[30]

4. 2. 자녀

4. 3. 건강 문제와 사망

2001년, 존 필은 62세의 나이에 오랜 기간의 피로감 끝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31] 2004년 10월 25일, 페루 쿠스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43][44] 향년 65세였다.[44]

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직후, 팬들과 지지자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다음 날, BBC 라디오 1은 그를 기리는 하루를 방송하기 위해 방송 일정을 비웠다.[43] 런던의 ''이브닝 스탠다드''는 그날 오후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문구를 게시하며 돈 맥클린의 히트곡 "American Pie"를 인용했다.

필은 종종 자신의 죽음에 대해 냉소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한때 채널 4 미니시리즈 ''Sounds of the Suburbs''에서 "나는 항상 카세트 테이프의 이름을 읽으려고 하다가 트럭 뒤에 들이받아 죽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사람들은 '그는 그렇게 가고 싶어했을 거야'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45]

필은 한때 그의 프로듀서 존 월터스보다 먼저 죽는다면, 월터스가 로이 하퍼의 노래 "When an Old Cricketer Leaves the Crease"를 틀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46] 앤디 커쇼는 필의 추모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BBC 라디오 3에서 틀어 필의 죽음을 기렸다. 필의 라디오 1 시간대의 대타였던 롭 다 뱅크도 그의 장례식 전 마지막 쇼의 시작 부분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 또 다른 때, 필은 가스펠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틀 노래는 C. L. 프랭클린의 설교 "Dry Bones in the Valley"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은 자신의 BBC 라디오 쇼 ''Home Truths''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47]

존 필의 무덤


필의 장례식은 2004년 11월 12일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에서 열렸으며, 1,000명 이상이 참석했다. 그의 형제 앨런과 동료 DJ 폴 갬바치니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장례식은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클립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의 관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언더톤스의 "Teenage Kicks"에 맞춰 운구되었다.[48] 필은 자신의 이름 외에, 그의 묘비에 "Teenage Kicks"의 가사 "teenage dreams, so hard to beat"만 새겨지기를 원한다고 적었다.[49] 2008년에는 그의 무덤에 가사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인 리버풀 FC의 리버 버드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다.[50] 그는 그레이트 핀버러의 성 안드레아 교회 묘지에 묻혔다.[50]

4. 4. 성 추문 의혹

존 필은 생전에 성 비위 혐의로 기소된 적은 없지만, 사망 이후 여러 건의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었다.[32][33] 언론인 사라 울리와 피오나 스터지스는 ''The Independent''에서 필이 1965년 당시 15세였던 셜리 앤 밀번과 결혼한 것을 언급했다. 당시 필은 25세였으며, 이는 텍사스에서는 합법이었다.[32][33]

필은 1975년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1989년 ''The Sunday Correspondent''와의 인터뷰에서 소녀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농담조로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35][37] 2004년 4월 ''The Herald''에 게재된 인터뷰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 만날 수 있는 여성은 고등학생뿐이었다고 말했다.[27]

2012년에는 한 여성이 1969년 필과 3개월간 관계를 가졌으며, 당시 그녀는 15세, 그는 30세였다고 주장했다.[39][35][38]

2022년, 이러한 혐의 때문에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존 필 스테이지' 이름을 변경하라는 청원이 시작되었고,[40] 2023년 '우드시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41][42] 페스티벌 공동 조직자인 에밀리 이비스는 이름 변경이 "최근 청원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41][42]

5. 유산 및 평가

그가 사망한 이후 여러 단체에서 필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신인 밴드 무대는 2005년 "존 필 스테이지"로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2023년 "우드지스"로 다시 변경되었다.

2005년 10월 13일, 그의 마지막 쇼를 기념하기 위해 첫 번째 "존 필 데이"가 열렸다. BBC는 가능한 한 많은 밴드들이 13일에 공연을 열도록 권장했고, 필이 좋아했던 뉴 오더와 The Fall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인 및 미계약 밴드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캐나다, 뉴질랜드까지 500개 이상의 공연이 열렸다. 두 번째 존 필 데이는 2006년 10월 12일에, 세 번째는 2007년 10월 11일에 열렸다. BBC는 원래 존 필 데이를 매년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라디오 1은 2007년 이후 이 행사에 대한 공식적인 기념 행사를 개최하지 않았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서 공연이 계속 열렸다.

존 필 창의 예술 센터가 2013년 초 스토우마켓에 문을 열었다. 이 센터의 주요 목적은 음악 및 공연을 위한 라이브 장소이자 지역 사회의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2008년 머지트래블은 그를 기려 기차의 이름을 명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 코츠월드 레일 기관차 47813은 필의 미망인 쉴라에 의해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 역에서 '존 필'로 명명되었다.

2005년 Mogwai의 라이브 컴필레이션 앨범 ''정부 위원회: BBC 세션 1996–2003''은 필에게 헌정되었으며, 일부 트랙은 필 세션 동안 연주되었다. 앨범의 오프닝 곡인 "Hunted by a Freak"의 인트로에서 필의 목소리로 "Ladies and Gentlemen, Mogwai!"라고 소개한다.

2007년, 앰비언트 듀오 Stars of the Lid는 인트로에 필의 사운드바이트가 포함된 'J.P.R.I.P'이라는 트랙이 포함된 투어 EP ('Carte De Visite')를 발매했다.

연례 질 페터슨의 전 세계 수상에서 "존 필 플레이 모어 재즈 상"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필의 고향인 헤스월에는 2007년에 그를 기리는 술집이 문을 열었다. The Ravenscroft라는 이름의 이 술집은 예전 헤스월 전화 교환국[71]을 개조한 것이었지만, 이후 이름이 변경되었다.

2012년 필은 예술가 피터 블레이크 경(Sir Peter Blake)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새로운 버전, 즉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커버에 등장하기 위해 선택한 영국의 문화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여러 필 관련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여기에는 그가 사망했을 때 미완성으로 남겨둔 그의 아내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인 ''존 필과 쉴라: 돼지의 빅 78s: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와 4장의 CD 박스 세트인 ''Kats Karavan: 라디오에서의 존 필의 역사''(2009)가 포함된다. 록 음악 평론가 피터 파피데스는 이 박스 세트에 대한 리뷰에서 ...And the Native Hipsters의 "There Goes Concorde Again"과 아이보어 커틀러의 "Jam"을 포함하여 "[s]일부 아티스트는 그와 영원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라디오 쇼 녹음을 공유하는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2012년 5월, 철거 위기에 처한 브래드포드 오데온을 존 필 창의 예술 센터로 북쪽에 세우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5. 1. 한국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 (간접적)

존 필은 직접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가 소개하고 지지했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은 한국의 인디 음악, 록 음악, 전자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인디 음악 씬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존 필이 BBC 라디오를 통해 소개했던 다양한 음악들은 한국의 음악가들과 청취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첨단 음악을 틀겠다는 그의 자세는 사망할 때까지 변치 않았으며, 만년에는 댄스 뮤직, 특히 덥스텝의 인기 향상에 기여했다.[90]

5. 2. 수상 경력 및 명예 학위

필은 11번이나 ''멜로디 메이커''의 올해의 DJ로 선정되었으며, 1993년에는 소니 방송인상, 1994년에는 대중 투표로 선정되는 ''NME''의 Godlike Genius Award를 수상했고, 2002년 소니 골드상을 수상했으며, 라디오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 회원이기도 하다. 2005년 NME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영웅으로 선정되었고, 사후에 "음악에 대한 평생 헌신" 특별상을 받았다.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교셰필드 할람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리버풀 대학교, 오픈 대학교, 포츠머스 대학교, 브래드포드 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의 펠로우십을 받았다.

1998년에는 영국 음악에 기여한 공로로 OBE를 받았다. 2002년 BBC는 역대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을 선정하는 투표를 실시했고, 필은 43위에 올랐다.[62]

5. 3. 사후 추모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신인 밴드 무대는 2005년 "존 필 스테이지"로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2023년 "우드지스"로 다시 변경되었다.

2005년 10월 13일, 그의 마지막 쇼를 기념하기 위해 첫 번째 "존 필 데이"가 열렸다. BBC는 가능한 한 많은 밴드들이 13일에 공연을 열도록 권장했고, 필이 좋아했던 뉴 오더와 The Fall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인 및 미계약 밴드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캐나다, 뉴질랜드까지 500개 이상의 공연이 열렸다. 두 번째 존 필 데이는 2006년 10월 12일에, 세 번째는 2007년 10월 11일에 열렸다. BBC는 원래 존 필 데이를 매년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라디오 1은 2007년 이후 이 행사에 대한 공식적인 기념 행사를 개최하지 않았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서 공연이 계속 열렸다.

존 필 창의 예술 센터가 2013년 초 스토우마켓에 문을 열었다. 이 센터의 주요 목적은 음악 및 공연을 위한 라이브 장소이자 지역 사회의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2008년 머지트래블은 그를 기려 기차의 이름을 명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 코츠월드 레일 기관차 47813은 필의 미망인 쉴라에 의해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 역에서 '존 필'로 명명되었다.

2005년 Mogwai의 라이브 컴필레이션 앨범 ''정부 위원회: BBC 세션 1996–2003''은 필에게 헌정되었으며, 일부 트랙은 필 세션 동안 연주되었다. 앨범의 오프닝 곡인 "Hunted by a Freak"의 인트로에서 필의 목소리로 "Ladies and Gentlemen, Mogwai!"라고 소개한다.

2007년, 앰비언트 듀오 Stars of the Lid는 인트로에 필의 사운드바이트가 포함된 'J.P.R.I.P'이라는 트랙이 포함된 투어 EP ('Carte De Visite')를 발매했다.

연례 질 페터슨의 전 세계 수상에서 "존 필 플레이 모어 재즈 상"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필의 고향인 헤스월에는 2007년에 그를 기리는 술집이 문을 열었다. The Ravenscroft라는 이름의 이 술집은 예전 헤스월 전화 교환국[71]을 개조한 것이었지만, 이후 이름이 변경되었다.

2012년 필은 예술가 피터 블레이크 경(Sir Peter Blake)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새로운 버전, 즉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커버에 등장하기 위해 선택한 영국의 문화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여러 필 관련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여기에는 그가 사망했을 때 미완성으로 남겨둔 그의 아내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인 ''존 필과 쉴라: 돼지의 빅 78s: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와 4장의 CD 박스 세트인 ''Kats Karavan: 라디오에서의 존 필의 역사''(2009)가 포함된다. 록 음악 평론가 피터 파피데스는 이 박스 세트에 대한 리뷰에서 ...And the Native Hipsters의 "There Goes Concorde Again"과 아이보어 커틀러의 "Jam"을 포함하여 "[s]일부 아티스트는 그와 영원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라디오 쇼 녹음을 공유하는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2012년 5월, 철거 위기에 처한 브래드포드 오데온을 존 필 창의 예술 센터로 북쪽에 세우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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